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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여행-임란의 횃불 유팽로 의병장과 의마총을 찾아서

작성일
2025.12.18 00:48
등록자
나종화
조회수
9
의마총
사당
사당
사당
합강

♣ 강직한 선비였으며 효자였던 유팽로 의병장
우리나라 역사에는 꼭 기억해야 하는 영웅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의외로 알려지지 않은 분들도 많아요.
같은 의병장인데도 홍의장군 곽재우는 유명하지만, 유팽로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이번 곡성 여행에서는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장인 유팽로(柳팽老) 장군의 유적지를 찾았습니다.
유팽로 의병장은 1572년(선조 5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벼슬을 물리고 내리 6년간 묘소 앞에 움막을 짓고 사는
시묘살이를 했습니다.
대단한 효자였다고 합니다.
그의 출중한 능력과 강직한 성품을 익히 알고 있던 선조임금은
시묘가 끝날 무렵 다시 조정으로 불러들여 벼슬을 하사했습니다.

♣ 피를 토하는 상소와 임란 최초의 의병
유팽로는 복직 이전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가능성이 높다는 측의 의견에 공감했고,
조정에 나아가자 곧장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지방 행정조직 개혁과 군비 확충을 통해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는데 번번이 묵살됩니다.
결국 벼슬까지 강등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때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됩니다.
유팽로 장군은 지체하지 않고 고향을 향해 말을 달립니다.
순창에서 이 혼란한 시기를 틈타 관아를 습격하려는 불량배 무리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설득하여 500명에 이르는 의병대를 편성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입니다.

장군은 이들을 훈련 시키는 한편, 고경명 등 호남의 유력한 인물들과 함께
호남 의병을 모집합니다. 이렇게 해서 모여든 8,000명에 이르는 호남 의병은
전주를 거쳐 금산으로 진격했습니다.
금산성 전투에서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군과 접전을 벌인 끝에 장렬하게 순국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전사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왜군도 큰 피해를 입고 호남 진출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 주도권을 남해안을 지킬 수 있었으니
결국 유팽로 장군이 호남과 조선을 살린 셈이지요.

♣ 의(義)의 서사, 정렬각과 의마총
이렇듯 일생은 물론 죽음까지도 위대한 영웅의 서사를 지닌 인물인데
그를 기리는 변변한 기념관조차 없다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네요.
정렬각과 백산사를 들러 경건한 마음으로 유팽로 장군을 기렸습니다.
유팽로 장군이 시묘살이를 할 때 전쟁 정보를 접하고 뒷산에 창고를 지어
무기와 군량미를 보관했다는데, 그곳도 발굴하여 성역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곡성에서는 드문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의마총(義馬塚)을 찾아갑니다.
장군이 전사하자, 그가 타던 애마(기록에는 장군이 고향으로 내려갈 때
천안 역참의 늙은 관원이 내주었다는 말)가 장군의 수급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말은 아예 곡기를 끊어버리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네요.
멀리 곡성의 명산인 동악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보이는
들녘 한복판에 자리한 의마총에는 실물 크기의 조형물도 설치되어 있었어요.
사람들이 그 말을 마을 입구에 묻어주었는데 그곳이 바로 의마총입니다.
배신이 난무하는 요즘 뉴스를 보면서 많은 공부를 하고 국민을 위해 정치한다고 나선
사람들이 말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의란 무엇인가', '애국이란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었던 뜻깊은 여행이었습니다.

■여행 팁
♣ 정렬각: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합강길 13-26
♣ 의마총: 전남 곡성군 입면 송전리 807-5
♣ 주변 가볼 만한 곳
함허정
성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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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6.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