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여행-곡성향교에서 풍기는 고혹한 향기
- 작성일
- 2025.12.18 01:14
- 등록자
- 나종화
- 조회수
- 27
첨부파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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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보수 마치고 완성체로 돌아온 곡성향교
오랜만에 곡성향교(谷城鄕校)를 찾아갔습니다.
몇 년 전 폭우로 훼손되었던 명륜당을 대대적으로 보수한 데 이어,
작년에는 입구에 유림관이 들어섰고
올해는 대성전 개보수까지 완료하면서 비로소 곡성향교가 몇 년에 걸친 공사를 마치고
완성체가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무척 반가웠어요.
다만, 아쉽게도 늦게 찾아간 바람에 곡성향교의 상징인 은행잎은
모두 떨어져 버려 특유의 노랑색 향연은 보지 못했어요.
오래된 목조건물과 단청에서 풍기는 고혹한 향기는 여전했어요.
곡성향교는 동악산 산등성이 지형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전
각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며
향교의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 역사의 풍파와 이전을 거듭한 곡성향교
해당 지역의 특성을 알려면
향교부터 찾아가는 것이 저만의 요령입니다.
향교 건물의 형태와 배치 자리하고 있는 공간을 보면
그 지역이 풍요와 학문중 무엇을 더 중시하는지를 알 수 있어요.
곡성향교는 의리. 정의. 학문을 중시하는 성격이
여러 곳에서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꽉 막히지 않은 곡성의 특성이
곡성향교 건축양식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어요.
*창건 시기: 곡성향교는 선조 때 세워졌다고 알려져 있으나,
새로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를 가르키고 있다고 해요.
아직 정확한 건 아니지만요.
*정유재란때 소실: 정유재란 당시, 남원 전투에서 후퇴한 왜군 1만 5천여 명이
곡성에 보름가량 머물렀고, 뒤쫓아온 명군과의 치열한 교전 과정에서
곡성 동헌과 향교까지 모조리 불타버리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재건 이 일로 인조 때까지 곡성현은 행정구역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복원되면서 곡성향교도 재건되었습니다.
*이전: 정조 때에 이르러 우리나라 인구가 크게 늘면서 현의 소재지들이 북적거리자
향교들을 조용하고 풍수지리적으로 우수한 곳으로 옮기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곡성향교도 그때 현재의 교동으로 이전해 왔습니다.
*현감 사적비: 마찬가지로 동헌에 있던 현감들의 사적비들도 곡성 동헌이 없어지면서
지금의 은행나무 아래로 옮겨졌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비석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고즈넉한 목조건물을 배경으로 인물 사진 찍기
곡성향교의 고혹한 색조와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사진 배경, 특히 인물 사진 배경으로 굉장히 좋습니다.
*색감 대비 활용: 오래된 목조건물의 어두운 나무색과 은은한 단청색은 인물을 차분하고 기품 있게 보이게 하는 완벽한 배경입니다.
인물의 의상은 한복이나 모노톤의 심플한 복장을 선택하여 배경과 과도하게 틔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구도와 프레임: 목조건물의 기둥이나 문을 활용하여 인물을 프레임 안에 가두는 구도를 시도해 보세요.
기둥 사이로 인물이 살짝 보이게 촬영하면 고풍스러운 느낌과 함께 깊이감이 살아납니다.
*그림자 활용: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올 때, 처마나 기둥이 만들어내는 선명한 그림자를 인물이나
건물에 활용하여 사진에 입체감과 한국적인 미장센을 더해줍니다.
*구도: 담장 위의 기와지붕 선이나 고즈넉한 돌담을 배경으로 삼아 인물이 걷거나 사색하는
모습을 담으면 가을의 고요함이 담긴 고품격 사진을 완성할 수 있어요.
■ 여행 팁
♣위치: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교촌길 40 (교동 소재)
♣관람 시기: 은행잎이 절정을 이루는 10월 말~11월 초가 최고이나,
고혹한 목조 건축의 아름다움은 사계절 내내 유지됩니다.
♣주변 가볼 만한 곳
곡성천 뚝방길: 산책 및 견생조각전 연계
섬진강 기차마을: 가까운 거리에 위치